채영희 10월 항쟁 유족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유족 김정현(89) 옹에게 감사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정윤제
채영희 10월 항쟁 유족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정윤제
제23호 부산 기장 오구굿 보존회 김동언 보유자가 오구굿을 하고 있다. 사진=정윤제

10월 항쟁 78주기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4주기 합동위령제가 10월 1일 오전 11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위령탑에서 열렸다. (사)10월 항쟁 유족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유족, 유족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종교 제례, 전통 제례, 합동 추모제를 가졌다.

위령탑 입구 축대 벽에는 10월 항쟁을 기리는 추모 시 40편이 게시됐고, 행사 안내 책자와 함께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에서 ‘그해, 10월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란 책자가 배부됐다. 책자에는 유족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으며, 채영희 이사장과 9명의 고인 가족들이 그리움을 담아 쓴 글이 포함됐다.

이날 행사는 천용길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 운영위원의 사회로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됐다. 식전 행사는 종교 의례로 진행됐으며, 불교계 대표 혜강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능화사 주지), 기독교 대표 장수연 목사(대구 경북 목회자 정의 평화협의회 상임대표), 천주교 대표 성용규 신부(신평천주교회 주임신부)가 각각 추모 의식을 가졌다. 이후 오구굿이 열렸으며, 김동언(제23호 부산 기장 오구굿 보존회 보유자)의 열창과 김동열(동 보유자)의 장구 반주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유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인들을 기렸다.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의 시월노래 공연에서는 ‘시월이 동백에게’와 ‘그날이 오면’이 연주됐다. 전통 제례는 유족 김수현, 김정섭 씨가 집사를 맡아 진행했으며, 분향재배는 채영희 이사장이, 초헌관은 김영호 부회장이 맡았다. 전체 유족이 합동으로 재배한 후 본격적인 합동 추모제가 이어졌다.

본 행사는 국민의례와 함께 시작됐고, 10월 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위한 묵념이 진행됐다. 이어 내빈 소개와 채영희 이사장 인사말이 있었다. 채 이사장은 “그해 10월을 기억해 달라”며, “생존, 자주, 민주를 외쳤던 10월 항쟁의 정신을 영원히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도사는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을 대신해 변순미 대구시 행정과장이 했으며, 김광호 부산유족회 회장 등도 추도사를 전했다. 시 낭독은 이정연 시인의 ‘뾰족구두’와 이창윤 시인의 ‘진실 밝히도록 해주만’이 낭송됐다.

위령탑 뒤편에는 당시 처참한 상황을 담은 사진과 함께 영혼을 위로하는 향토 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졌다. 한 벽면에는 ‘무덤도 없는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행사는 채영희 이사장이 “아버지”라고 선창하고 참석자들이 “아버지”를 삼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참석자는 국화를 헌화하고 기도하며 고인을 기렸다. 행사 후 유족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나누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10월 항쟁 78주년 대구·경북 시도민대회가 한일극장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대구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중 항쟁이다. 이에 한 달 앞선 9월, 미군정은 전국적으로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쌀 배급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대구에서는 10월 1일을 기점으로 대규모 항쟁이 시작됐다. 미군정과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10월 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됐다.